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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자료
1860년~1909
구한말 농민, 노동자들이 가뭄과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어 중국, 러시아로 이주하였다.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1902년 부터 1905년까지 7,400여 명이 이주하였다.

1860년. 북경조약으로 연해주 러시아로 편입, 연해주 변방 개척을 위해 한인들 입국 허용.
1867년. 조선 정부, 한인 이주를 막기위해 유민 방지책 발표.
1875년. 청나라 북간도 지역 봉금정책 해제로 한인 이주 시작, 집단 부락 형성.
1882년 5월. 인천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884년. 조선과 러시아, 조로수호통상조약으로 한인 이민 제한.
1897년 7월. 조선인 100여명이 일본 사가현 조자 탄광에 취업(최초의 조선인 도일 노동 사례)
1902년 11월. 최초의 해외 이민 업무 담당 기관 유민원 설치.
1902년 12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자121명, 인천에서 출발.
1903년 ~ 1913년


1903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신민회 조직.
1905년. 멕시코 이민 1,033명 인천 제물포 출발.
1906년. 간도에 민족 교육을 위해 서전서숙 설립.
1906년 6월. 조선 정부 이민보호법 공포.
1906년 11월. 재일본도쿄조선기독청년회 결성.
1908년 3월. 장인완, 전명운 의사,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 외교 고문 스티븐슨 저격.
1909년 2월. 하와이 한인합성협회와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공립협회가 통합하여 국민회 조직.
1910년 11월. 사진신부 제1호 최사라, 하와이 도착(하와이 국민회장 이내수와 결혼)
1913년 5월. 안창호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 창립.
1910년 ~ 1944년
대일항쟁기에 토지와 생산 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노동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또한 정치적 난민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러시아,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14년 1월. 일본에서 조선인노동단체인 오사카 조선인친목회 창립.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1918).
1917년 6월. 일본 홋카이도 탄광기선(주) 소속 조선인 노동자 165명 파업.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 "민족자결 14원칙" 발표.
1919년 2월. 일본 유학생 조선독립선언서 발표(2.8 독립운동)
1914년 4월. 조선총독부 조선인 여행 취체에 관한 건 발표(경무총감부령 제3호)
1919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이승만을 대한민국 임시 대통령에 선출.
1920년.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 농민들 압박.
1920년. 일본지역조선인 32,461명(노동자 29,232명 포함).
1921년 3월. 멕시코 한인 288명 쿠바로 이민.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발생, 일본 유언비어로 한인 6,000여 명 학살.
1925년 2월. 재일본조선노동총연맹 결성.
1929년. 일본지역 조선인 276,031명(노동자 195,339명 포함)
1931년 9월. 일본군 만주침략 단행(만주사변,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시)